- 저자
- 김영하
- 출판
- 복복서가
- 출판일
- 2022.05.02
2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김영하 작가가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소설을 밀리의 서재에서 독점 공개한다던 광고 말입니다. 자신이 로봇인지 모르던 한 로봇 소년의 이야기란 소개에 호기심이 매우 발동했지만, 당시엔 다른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 중이었기에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고 종이책으로 세상에 풀렸습니다. 이야기를 보탠 <작별인사>가 새롭게 출간됐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종이책으로 풀렸지만, 저는 결국 밀리의 서재에서 전자책으로 읽었습니다. 그사이 전자책 서비스를 '밀리의 서재'로 바꿨거든요.
철학하는 하이퍼 휴머노이드 철이
열일곱 소년 철이는 하이퍼 휴머노이드를 제작하는 대형회사의 개발자인 아버지 최박사와 단란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철이는 매우 감상적이며 생각이 많은 아이입니다. 죽은 새를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어 기어코 땅에 묻어줘야 마음이 편할 정도로 말입니다. 철이의 이름은 '철학'의 철입니다. 그만큼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한 아버지 덕에 철이는 천자문을 배우고, 철학을 공부합니다. 그런 철이가 어느 날 불법 무등록 휴머노이드를 분류되어 정부로부터 강제로 수용됩니다. 자신이 휴머노이드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철이에게는 충격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용소에서 만난 휴머노이드 민과 불법 복제된 클론 인간 선과 수용소를 탈출하고, 신과 같은 AI인 달마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철이는 인간다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뭘까요?
작가 김영하
특별히 작가를 꿈꾸지 않았지만, 대학원 시절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경험 때문일까요? 지금도 여러 지역으로 여행하며 요리, 그림 그리기, 정원 일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정말 부러운 삶이 아닐 수 없는데요. 오래전에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다가 나도 모르게 푹 빠져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문체는 담백하고 심플하지만 날카롭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바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전달하면서도 수많은 질문을 남기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읽는 동안은 가볍게 줄줄 읽히지만, 책장을 덮으면 뭔지 모를 여운이 남아 다시 책장을 뒤적이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작별인사>도 그런 작품입니다.
비슷한 것은 가짜?
주인공 철이의 아버지, 그러니까 철이를 만든 최박사는 오직 인간만이 호기심과 욕망, 신념을 가지고 다른 세계로 탐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감정이 있는 존재만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래야 그 결정들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AI는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도 복제해 그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인공지능도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고, 결정하고, 발전합니다. 그런데도 비슷한 것은 가짜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작별인사>를 읽는 내내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에게 몰입했는데도 말입니다. <작별인사>에 인용된 유명 SF작가 아서 C. 클라크의 유명한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는 말처럼 정말 그런 마법 같은 세상이 곧 현실이 될 거라 믿습니다. <작별인사>를 읽으면서 영화 <Her>와 베르베르의 소설 <고양이>가 자꾸 떠오른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사실 <작별인사> 속 미래는 이미 우리 주변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매일 기가지니에게 오늘의 날씨를 묻고, 시리가 추천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니까요.
자기를 잘 아는 게 지혜의 출발
지난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SF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인간과 로봇의 이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서로 섞여 살아가는 마법 같은 세상, 그때 벌어질지도 모를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고, 어떻게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구별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중요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는 수많은 질문과 여운을 남겼습니다. 자기를 잘 아는 게 지혜의 출발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인간이니 인간다움이 뭔지, 그것부터 짚고 가는 게 지혜의 출발이겠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타인을 위하는 마음, 바로 이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이라면 이타심마저도 가질 수 있겠다 싶지만, 이타심만큼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 인간만이 선택할 마음이길 바라봅니다.
단순히 인간과 로봇의 문제를 넘어 인공지능으로 확대된 이야기가 특히 흥미진진했습니다. 미래에는 다소 거추장스러워질지도 모를 육체일지라도 실제가 존재함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있고, 볼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꽃향기를 맡으며 음악도 들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철이처럼 늙어, 아니 낡아갈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 꽤 괜찮은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저자
- 김영하
- 출판
- 복복서가
- 출판일
-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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