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클라라 뒤퐁-모노
- 출판
- 필름(Feelm)
- 출판일
- 2022.10.18
우연히 좋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클라라 뒤퐁-모노라는 프랑스 작가의 소설 <사라지지 않는다>인데요. 연둣빛 표지가 예뻐서 집어 들었다가 그 내용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특히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 책은 훌륭한 육아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 때 첫 째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첫째는 첫째대로 걱정, 아픈 언니 때문에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둘째는 둘째대로 걱정. 부모의 입장에서 걱정은 끊이지 않는데요.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가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어느 가족에게 부적응한 아이가 태어났다.
2021년 프랑스 4대 문학상 ‘페미나상’ 수상한 클라라 뒤퐁-모노의 장편소설 <사라지지 않는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산속 마을, 오래된 집의 벽에 붙어 있는 돌멩이가 화자입니다. 돌멩이 시점의 이야기는 처음인데요. 그 집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납니다. 작가는 이 아이를 부적응 아이라고 말합니다. 그 아이로 인해 가족이 겪게 되는 변화와 적응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각각 맏이와 누이, 그리고 아이가 죽은 뒤에 태어난 막내의 이야기로 총 3부로 나뉘어 전개됩니다.
1부 맏이
낯선 것에 대한 두려운 나머지 먼저 나서서 두려움을 통제하던 맏이는 아이에게 순응합니다. 맏이는 오직 산처럼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호하는데요.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온전하고 충만한 행복감에 빠져 사회는 물론 누이와도 멀어집니다. 솔직히 맏이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했는데요.
2부 누이
반면, 아이에게 오빠를 빼앗겼단 생각에 질투를 넘어 거칠게 반항하고 거부하는 누이는 차라리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인근에 사는 할머니와 그녀의 친구들만이 그런 누이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주는데요. 누이는 할머니에게 왜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그에 대한 할머니는 슬프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슬픈 사람은 판단하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세상엔 슬프면서도 못된 사람이 많다는 누이의 반박에 할머니는 말합니다. 그럼 그건 불행한 사람들이지 슬픈게 아니라고요. 누이는 할머니와 지내면서 오렌지 와플 만드는 법과 산에서 부는 사람이 어떤 의미인지 등을 배웁니다. 폭풍같은 반항의 시간을 겪은 덕분일까요? 누이는 남이 해주길 바라지 않고 자신이 먼저 나서기로 결심합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죠. 가족들의 문제를 찾아 적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기록하고 행동합니다. 결국 누이는 그렇게 적응해 갑니다.
3부 막내
그리고 아이가 죽은 뒤 태어난 막내는 자신은 만나본적 없는 형의 흔적들 속에서 적응해 가는 법을 찾습니다. 막내는 왕이 된것 같았지만 남의 것을 빼앗은 것만 같아 부담스럽습니다. 형의 자리를 차지해서 미안하고, 정상으로 태어나서 미안하다고. 형은 죽었는데 살아서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죽은 형에게 은근한 질투를 느끼기도 하는데요. 막내는 아이도, 할머니도 본적 없지만, 남은 가족들로부터 그들의 존재를 느낍니다.
결국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혼자였지만, 동시에 함께였는데요. 그렇게 가족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수백년을 묵묵히 한 자리에서 단단하게 인간을 지켜보고 지켜줬던 돌멩이들. 그들에게는 이 또한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하겠죠?
인상적이었던 표현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비유적인 표현이 특히 눈에 띄었는데요. 맏이가 창문을 열고 아침을 방으로 들였다라던지, 리듬에 맞추어 산을 발로 걷어차듯 걸었다던지, 붉고 구깃구깃한 가을 밤이라던지. 문학적이면서도 정확한 묘사 덕분에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아침을 들여야겠다!" 너무 멋진 표현인 것 같아요.
부모의 역할이란?
잠시 육아의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읽은 책이라 그런지 위로가 되는 말도 많았는데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한 노력만 기억한다고 누이가 말합니다. 자식은 아버지가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집안의 한구석을 꾸미는 노력을 기억한다고 말이죠. 그건 냉장고에 캐비어를 가득 채워놓고 곁에 없는 아버지보다 훨씬 낫다고 합니다.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부모의 노력을 기억하는 자식은 삐뚤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는 산처럼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산처럼 버티고 기다려주고 내어주고 품어주고 평가하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은 절대로 가두어서는 안 되고 순환하게 놔둬야한다는 사실.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었다 믿을만큼 힘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만약 한 아이가 아프다면, 다른 형제들도 잘 살펴야 한다던 누이. 건강한 애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자기한테 주어진 뾰족한 삶의 윤곽에 적응하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의 모양새에 몸을 맞춰간다는데요. 너무나도 슬픈 얘기인데요. 역시 부모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소설의 프랑스 원작의 제목을 우리 말로 풀면 ’적응하다.‘라고 하는데요. 돌멩이들이 그랬고, 산이 그랬고, 자연이 그랬듯 우리는 적응해 살아갈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 저자
- 클라라 뒤퐁-모노
- 출판
- 필름(Feelm)
- 출판일
- 2022.10.18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리뷰] 가슴 뽀땃해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0) | 2023.03.02 |
---|---|
[책 리뷰]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인간 안중근 <하얼빈> (0) | 2023.02.07 |
[책 리뷰]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작 <그날 저녁의 불편함> (0) | 2023.01.03 |
[책 리뷰] 60분 만에 평생 아이디어 맨이 되는 법 <아이디어 생산법> (0) | 2022.12.05 |
[책 리뷰] 우화적인 SF <클라라와 태양> (0) | 2022.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