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목표 중 1주 1독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최소 책 한 권 씩 읽자! 막연히 책을 읽기보다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1주일에 책 한 권식은 읽었습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 쌓여가는 재미 또한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의무적으로 권수만 늘리기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지? 무엇을 위해 책을 읽는지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담은 에세이
다소 낭만적인 제목의 <소설처럼>은 책 읽는 즐거움을 담은 독서 에세이입니다.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책머리에 부디 이 책을 강압적인 교육의 수단으로 삼지 말기를 당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부모와 아이들 간의 흔한 실랑이가 펼쳐집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읽을 것을 강요하는 부모의 실랑이가 어찌나 사실적인지요. 마치 우리 집을 보는 것만 같아 웃음이 터졌습니다. 두 딸이 어릴 때는 책 꽤나 본다 싶었는데 어쩌다 두 딸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는 엄마가 됐을까요? 뜨끔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크게 바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냥 책 읽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저의 욕심도 함께 커갔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기왕이면 이런 책도 읽었으면 좋겠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느꼈으면 좋겠고 좀 더 많이 읽으면 좋겠고 등등. 자꾸 뭔가를 바라게 되면서 아이들도 서서히 책과 멀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 다니엘 페나크
학창 시절에는 열등생이었으나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면서 독서에 남다른 흥미를 갖게 됐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말로센' 시리즈와 어린이 책 '까모'시리즈로 대중성과 문학성 둘 다 인정받으며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에세이와 소설, 다수의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등 명실상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미스터리 비평상(1988년), 리브르 엥테르 상(1990년), 르노드 상(2007년)을 수상했습니다. 1995년 교직에서 물러나 집필에 전념하면서도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만난다고 하니 책 읽는 즐거움을 전하고 싶은 작가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유튜브란 보상을 위해 고역으로 전락한 책 읽기
밤마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던 그때가 생각났습니다. 첫째 딸이 4살일 때의 일입니다. 신데렐라를 읽어주는데 제가 좀 많이 심취해서 실감 나게 읽어줬습니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놀란 신데렐라가 계단을 허겁지겁 뛰어내려 가던 중 유리구두가 벗겨지는 장면이었습니다. 4살 딸이 엉엉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구두에 찍찍이를 붙였어야지!" 그 순수함이란. 지금도 종종 그때를 떠올리면 미소 짓곤 합니다. 그랬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동안 나도 모르게 두 딸에게 책 읽기를 놓고 얼마나 많은 강요와 협박을 했는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았습니다. 고리대금업자가 따로 없었구나. 아이들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은 건 바로 나였습니다. 유튜브는 못 보게 하면서 책은 읽길 바라는 마음에 유튜브를 볼모로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유튜브는 달콤한 보상이 됐고 독서는 유튜브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 치워야 하는 고역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다시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시 영영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질 수는 없는 걸까요? 작가 다니엘 페나크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책을 골라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크게 소리 내어 읽어주라 말합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왜 사람들이 낭독회를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낭독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달라진다는 작가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 후 30분씩 다 큰 두 딸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읽고 있는 책이 모모라 우리끼리는 그 시간을 ‘모모 타임’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책을 읽고 아이들은 귀를 열어둔 채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책 읽는 시간을 훔쳐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 같다고 합니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입니다. 호기심을 우격다짐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일깨워줘야 한다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애나 어른이나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로 시간을 탓하곤 합니다. 시간은 늘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글을 쓰는 시간이 나를 사랑하는 시간인 것처럼, 독서도 사랑이 그렇듯 그저 존재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시간이 없다고 사랑을 못하진 않는것처럼 시간이 없다고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건 결국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책 읽을 시간을 훔쳐서라도 마련하니까요.
독자의 권리 10가지
작가는 말합니다. "인간은 살아 있기에 집을 짓고 죽을 것을 알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살지만 혼자라는 것을 알기에 책을 읽는다." 결국 인간은 혼자이므로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소설처럼>의 핵심은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제시하는 '독자의 권리 10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권리는 곧 그동안 강박처럼 여겼던, 그래서 독서를 힘들게 했던 것들로부터의 10가지 자유를 말합니다.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슴을 누릴 권리 ('보바리슴'이란 감각만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충족감을 말합니다.)
7.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우리는 독자의 권리를 얼마나 누리고 살까요?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매주 한 권씩 책 읽기는 그만뒀습니다. 더 이상 권 수 늘리기는 저에게 의미가 없어졌거든요. 읽다가 재미없으면 그만 읽기도 하고 훑어보기도 하고 그냥 책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합니다.
결국 책머리에서 작가가 했던 당부는 간곡한 바람이었습니다. 부디 이 책 <소설처럼>을 책 읽는 즐거움을 위한 수단으로 삼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가이드북 같은 책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은 그저 소설처럼 재밌게 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올 가을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 말이죠.
- 저자
- 다니엘 페나크
- 출판
- 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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