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유은실
- 출판
- 비룡소
- 출판일
- 2021.03.05
청소년 문학이라고 분류된 책들을 종종 읽습니다. 부담 없이 읽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두 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요즘 아이들의 세계와 심리를 엿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나 역시 지나온 시기이기에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두 딸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됩니다. 게다가 내가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추천하기도 좋습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는 묘한 동질감, 그 이상의 뭔가가 있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분들이라면 청소년 문학 소설을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그중 오늘의 추천으로 <순례주택>을 선택했습니다.
철부지 가족의 온실 밖 세상 적응기가 시작됩니다.
75세 순례씨가 건물주로 있는 다가구 주택 순례주택에 그녀의 최측근인 16세 수림이네 가족이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순례씨는 수림의 외할아버지의 여자 친구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수림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옛 여자 친구가 맞겠습니다.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열심히 일하며 번 돈으로 순례씨는 순례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이 집을 떼돈 벌어 지은 집이라고 말합니다. 성실하고, 합리적이고, 유쾌한 순례씨를 무시하는 사람은 수림이네 가족뿐입니다. 어린 시절 순례씨 밑에서 큰 수림이만 빼고요. 가족들에게 공부 못하는 수림이는 늘 문젯거리였지만, 정작 수림에겐 현실감 없이 철부지로 살아가는 가족들이 문젯거리입니다. 수림은 완전히 망해 순례주택으로 이사하면서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가족들을 어쩌면 좋을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순례씨는 수림과 손잡고 철부지 가족을 온실 밖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특별한 계획을 세웁니다. 과연 그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여러 상이 증명하는 작가 유은실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인 국제청소년도서위원회 IBBY는 2년마다 추천작품을 수록한 어너리스트를 발표합니다. 그 목록에 오른다면 그야말로 영광일 텐데요. 순례주택의 작가 유은실 작가는 2010년 <멀쩡한 이유정>이란 작품으로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국기 소년>으로 한국어린이도서상을, <변두리>로 권정생 문학상이 빛나는 작가입니다. 그 밖에도 여러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썼는데요. 특히 <일수의 탄생>에 눈에 띕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학년별 필독서 목록을 보게 됩니다. 그때 꼭 빠지지 않는 책이 바로 <일수의 탄생>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작가입니다. 쉽고 유쾌한 문체가 순례씨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도 그런 분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글은 결국 작가의 생각을 담은 그릇이니까요.
진짜 어른, 풋 어른, 순례자에 대한 생각
<순례주택> 을 읽고 여러 생각들을 했습니다. 애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서 가볍게 읽었다가 재미있어서 빠르게 읽었는데 의외로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건물주인 순례씨의 이름은 사실 개명한 새 이름입니다. 개명 전에는 '순하고 예의 바르다.'라는 뜻의 순례였지만, 지구별의 순례자처럼 살고 싶어서 순례자의 순례로 거듭났습니다. 순례씨의 모든 가치관이 잘 잠겨져 있는 멋진 이름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순례씨는 수림에게 진짜 어른과 가짜 어른이 있다고 말합니다. 진짜 어른이란 혼자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짜 어른입니다. 그러니 수림이네 부모님은 가짜 어른입니다. 가짜 어른은 불평도 불만도 참 많습니다. 모두가 남의 탓입니다. 반면 진짜 어른 순례씨는 감사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합니다. 그런 순례씨가 가장 좋아하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그런 순례씨에게도 처음은 늘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신을 풋노인이라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나는 진짜 어른일까요, 아닐까요? 애매하게 그 중간 어디쯤 있지 않을까요? 지구별 여행자로 살아가야겠다 했는데 순례자란 말이 참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뭔가 책임지고 감사하며 사는 삶을 살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움의 연속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풋풋하고, 그래서 늘 어렵습니다. 이 말이 또 그렇게 위로가 됩니다. 75세 건물주인 순례씨도 어렵다는데 내가 어려운 건 당연하겠죠. 순례자의 마음을 가지고 평생 풋어른으로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
유은실 작가의 <순례주택>는 유쾌하지만 잔잔한 여운을 오래 남깁니다. 저의 추천으로 읽어본 아이들도 재밌게 읽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철부지 수림이네 가족들이 답답하고 얄밉지만 은근히 재밌습니다. 어른들은 다 완벽하고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어른도 있다는 게 아이들에겐 큰 쾌감을 주는 듯합니다. 나이를 초월한 순례씨와 수림이의 우정도 참 특별했습니다. 누가누가 더 어린가 내기를 하며 허공에 붕 떠서 사는 수림이네 철부지 가족을 보면서 남몰래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수림네 가족뿐 아니라 저 역시 세상 밖의 땅에 발을 단단히 딛고 살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구별 순례자로 늘 감사하며 살 수 있길 바라봅니다.
- 저자
- 유은실
- 출판
- 비룡소
- 출판일
- 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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