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하퍼 리
- 출판
- 열린책들
- 출판일
- 2015.06.30
평소에는 잘 손이 안 가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야겠다 생각하는 숙제 같은 책들이 있습니다. 흔히 고전이라 불리우는 책들이 그런데요. 독서모임을 하면 좋은 점이 바로 그 숙제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고전을 읽고 나면 "아, 이래서 고전이구나~!" 싶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뭔가가 있는데요. <앵무새 죽이기>는 고전이란 편견에 미뤄두기엔 아까울만큼 재밌고 감동과 여윤이 큰 책이었습니다.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책이라더니 과연 그럴만하다 싶었는데요. 하퍼 리의 장편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소개할게요.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본 편견 가득한 세상
<앵무새 죽이기>는 1933년 미국 앨라배마주의 메이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아홉살 말괄량이 소녀 스카웃과 오빠 젬 그리고 친구 딜이 겪는 1년 간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성인이 된 스카웃이 그 시절을 회상하며 화자로써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요. 그래서 아홉살 스카웃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삼총사는 15년 째 집 밖으로 나온 적 없다는 부 래들리씨 집을 기웃거리며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는 듯 호들갑을 떨며 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변호사인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 남성인 톰 로빈스의 변호를 맡는데요. 과연 정의가 승리할지... 당시 만연했던 인종과 신분의 차별에 분노하게 합니다. 특히 재판과정을 지켜보던 딜이 눈물을 쏟는데요. 그런 딜을 두고 마을의 괴짜인줄만 알았던 한 어른이 말합니다.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딜의 눈물에 어른이 제가 부끄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는데요. 어른들도 한때는 다 어린이였으니까 불의를 보면 구역질이 눈물을 흘렸었겠죠? 어쩌다 어른들은 눈물 마저 말라버린 걸까요.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합니다.
그래도 좋은 어른들이 있어 다행
편견에 치우쳐 살아가는 어른들이 대부분이지만, 좋은 어른도 있습니다. 스카웃의 아버지가 그렇고 이웃집 아줌마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스카웃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드는데요. 그중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발췌해봤습니다.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p65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p200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p213
아빠는 자신이 관심 있는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이 관심을 갖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 바른 태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286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p399
소설 속 배경인 1933년에서 9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종과 신분의 차별은 여전합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회적 골칫거리인데요. 그럼에도 스카웃의 아버지 같은 분의 용기 덕분에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있단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더딜 지언정 분명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아기걸음일지언정 우리가 계속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카웃의 아버지의 말처럼 세상엔 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고, 잘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니까요.
무해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유죄
마지막에 스카웃은 래들리 집 현관에 서서 자신의 집과 이웃집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비로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 것이니까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을 스카웃은 완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적인 사건과 오픈 결말이 많은 이야깃 거리를 남기는데요.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쉴새 없이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제목이 왜 앵무새 죽이기 일까? 오픈 결말 그 이후에 대한 각자의 예상 등등. 무해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라고 말했던 스카웃의 아버지의 말에 힌트가 있을까요?
2001년 미국 시카고에서 흑인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펼쳤다는데요. 그때 첫번째로 선정된 도서가 바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였다고 합니다. 그후 시민의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데요. 과연 그럴만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딸도 이 책을 꼭 읽으면 좋겠다 싶은데요. 읽으라 그러면 싫어하겠죠? 하긴 저도 이제야 읽은 것을요. 다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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