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룰루 밀러
- 출판
- 곰출판
- 출판일
- 2021.12.17
이 책은 과학 책일까? 에세이일까? 처음엔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알았습니다.과학전문 기자가 에세이를 쓰면 이렇게 되는구나! 어떤 책인지 궁금하시죠? 전세계 언론이 극찬한 룰루 밀러의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소개할게요.
넌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아!
룰루 밀러는 과학자인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넌 이 세상에 중요하지 많아!”
무턱대고 자식의 기만 살려주는 것도 문제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자식의 기를 꺾다 못해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말이 아닐 수 없는데요. 아버지는 ‘혼돈’ 만이 유일한 지배자라 믿었다죠.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으니 우리 모두 중요하지 않다, 뭐 그런 독특한 생각의 소유자였던 건데요. 학창시절에 당한 왕따,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 등등.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룰루 밀러에게 아버지의 조언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살아갈 의지도 희망도 사라져버린 어느 날, 룰루 밀러는 19세기 생물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매료됩니다. 그는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 관계를 밝혀내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인데요. 그가 밝혀낸 물고기만 무려 2,500 종이 넘을 만큼 그의 물고기 수집은 집착에 가까웠습니다. 벼락 맞고, 지진에 모든 수집품을 잃기도 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는데요. 룰루 밀러는 바로 그 부분이 궁금했습니다. 숱한 혼돈과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그만의 추진력과 용기의 근원은 뭘까? 룰루 밀러는 그를 탐구하기 시작합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탐구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가 데이비드의 일대기를 통해 삶을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마치 데이비드가 물고기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찾으려 했던 것 처럼요.
자연에 호기심이 많던 소년은 분류학자가 되고 교수가 되고 스탠포드 대학교의 초대 학장이 됩니다. 성공적인 삶으로 이끈 그만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과 긍정적 자기기만은 그릿으로 연결되는데요. 그릿이란 끈질긴 투지를 뜻합니다. 긍정적 피드백이 없어도 꾸준히 반복하는 것.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세상에 또 있을까요?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이 결국 바윗돌을 뚫듯 어떤 재능도 꾸준함을 이기지 못한다잖아요. 그 어려운 걸 해낸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입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그릿은 예상치 못한 결론에 다다르는데요.
죽는 순간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은 겁니다. 자연계에는 강자가 더 오래 살아남고 더 우월해진다는 우생학.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의 근거로 삼은 그 우생학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고 정책 마련에 앞장섰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수많은 사람을 강제 감금하고 강제 낙태수술까지 만연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러고 보니 그에게 따랐던 모든 행운조차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어쩌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그의 집착적인 물고기 분류 작업 역시 인간의 오만 아니었을까요?
부족함과 실수, 오류에서 '민들레 원칙'을 배우다
룰루 밀러는 큰 실망과 혼란에 빠지는데요. 그의 부족함과 실수, 오류를 피하지 않고 우생학의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만납니다. 그리고 큰 교훈을 얻습니다. 바로 민들레 원칙인데요. 누군가에게 민들레는 잡초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겐 약재이고, 화가에겐 염료이며, 히피에겐 화관이 되기도 하고,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되기도 하는 것 처럼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요. 서로 주고받는 작은 것들, 작가는 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실에 꿰인 플라스틱 구슬 등을 예로 드는데요. 그리 대단치 않을 지도 모를,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습니다. 지구라는 이 행성을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도 모릅니다.
결국 데이비드는 아름다운 삶으로 인도해주진 않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작가는 스스로 알게 됩니다.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다는 것을요. 결국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보장해주는 안내자도, 지름길도, 마법의 주문 따위도 없다는 걸요.
애당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애당초 어류라는 범주는 세상에 없었다는 사실! 외모와 환경 같은 인간의 직관이 오해와 오류를 불러왔을 뿐 인간의 직관을 배제하니 어류는 없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요. 지금껏 제가 믿고 있던 건 다 뭐죠? 천동설을 믿던 시절 지동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작가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별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물고기를 포기하면 뭘 얻을 수 있을까요? 분명한 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도 못했던 데이비드에게만큼은 확실한 복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평생을 바친 일이 무의미해졌으니까요.
작가는 말합니다. 범주를 의심하고, 그 밖의 세상을 상상하라고요. 인간은 줄곧 틀려왔잖아요. 그러니 인간이 평의로 그어 놓은 범주 안에 안주하지 말고 나아가야겠습니다. 그 곳에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으로 말이죠. 그리고 넌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다고 했던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틀렸다고요.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 사회에, 서로에게 중요해요. 아버지, 우리는 모두 중요해요!”
이과적 이성과 문과적 감성이 만나면 벼락은 우주가 손목 관절을 우두둑 꺾으며 공기 중에 숨어 있던 이온들의 작은 주머니들이 터지는 게 되고, 지진은 지구가 어깨를 들썩이는 게 된다는 사실도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폭 넓게 만들어 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 저자
- 룰루 밀러
- 출판
- 곰출판
- 출판일
- 2021.12.17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리뷰]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야 <완전한 행복> (0) | 2023.04.17 |
---|---|
[책 리뷰]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부자의 그릇> (0) | 2023.03.28 |
[책리뷰] 가슴 뽀땃해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0) | 2023.03.02 |
[책 리뷰]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인간 안중근 <하얼빈> (0) | 2023.02.07 |
[책 리뷰] 우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할뿐 <사라지지 않는다> (0) | 2023.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