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책 리뷰]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호수의 일>

dxd_tourist 2022. 10. 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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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 중 부산역 인근의 <창비 부산>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출판사 창비에서 운영하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열린 공간인데요. 1927년에 세워진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주는 레트로함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막상 들어가 보면 작가의 방 같은 상설 전시도 있고 햇살 가득한 열린 공간에서 마음껏 책도 읽을 수 있는 멋진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사 온 책이 바로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입니다. 책 맨 앞장에 덩그러니 인쇄된 문장 하나에 홀리듯 결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 첫 페이지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너무나 이해가 되면서 '몹시'란 강조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 표지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

얼어붙은 호수처럼 위태로운 10대들의 이야기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호정은 여느 고등학교 1학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적어도 시작은 그렇게 보입니다. 안전하지만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는 위태로움을 안고 있는 얼어붙은 호수처럼 말입니다. 얼어붙은 호수에 균열이 생긴 건 강은기란 아이가 전학을 오면서부터입니다. 처음엔 그 나이 때 흔히 겪는 첫사랑과의 만남과 헤어짐 정도를 담은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꽤 아픈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호정이도, 은기도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슬픔을 알고 이해하는 작가.

호수의 일의 저자 이현 작가는 많은 동화를 쓴 동화작가입니다. 장편동화 <로봇의 별>로 제2회 창원 아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한국 후보로도 선정됐다고 합니다. 작품 중 제1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을 받은 동화집 <짜장면이 불어요>라든가, <푸른 사자 와니니>는 애들을 키운다면 매우 익숙할텐데요. 이현 작가는 <호수의 일>을 매우 슬픈 시절에 썼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슬픔에서 자라지만, 행복한 기억이 있어 슬픔에 침몰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참 좋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호정의 이야기는 다 큰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뭐 그 정도 가지고 저러나 싶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10대 땐 다 그러잖아요. 작은 일도 엄청 큰 일 같고 그때의 충격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점점 호정에게 몰입이 되면서 호정의 상처가 이해됐습니다. 청소년 소설을 읽는 재미가 이런데 있습니다. 분명 나도 지나온 시절인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까먹고 있던 감정들을 깨워줍니다. 그 덕에 두 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좀 더 존중하게 됩니다.

아픈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괜찮아!

은기는 큰 비밀과 반전을 품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로부터 상처를 입습니다. 그 상처를 견디는 것은 결국 아이들 각자의 몫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건 아닌지 자꾸 돌아보게 합니다. 호정이 은기에게 하고 싶었던 말. "괜찮다고, 아픈 일이 있었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그 말에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책장 맨 마지막을 넘겼는데 역시나 덩그러니 인쇄된 한 문장이 묵직한 돌이 되어 제 마음에 던져졌습니다. 그 돌이 만든 파문이 제 온미음으로 번졌습니다.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 마지막 문장
이현 작가의 호수의 일

그렇습니다.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자. 어디 10대뿐일까요? 이 만큼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인생은 좌충우돌입니다. 그럴 때마다 자책을 합니다. 어떻게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이럴 수가 있지? 하지만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덕분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작가는 우리 모두가 흠뻑 슬프기를, 마음껏 기쁘기를, 힘껏 헤엄쳐 가기를 바랍니다. 발이 닿지 않는 호수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믿건대, 어느 호수에나 기슭이 있으니 믿고 나아가라 말합니다. 두렵지만 믿고 나아가는 것, 그게 인생일 테니까요. 특히 10대는 더 그렇습니다. 아이러니한 마음. 10대의 이야기. 두 딸과 함께 읽어서 더 좋았던 책 <호수의 일>이었습니다.

 

https://youtu.be/aLvcI78pGUI

보고듣는 독후감 <호수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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